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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이 선언하고 있는 이 나라 가장 첫 번째 법의 근간이다. 민주공화국(民主共和國)이라는 말은 곧 국민, 그리고 마을에 살고 있는 ‘주민이 주인이자 왕’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주민자치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여기에서 끝난 것인지도 모른다. 민주공화국에서 마을의 주인은 마을에 살고있는 주민이다. 그리고 주민자치는 어느 날 국가가 주민에게 새롭게 나누어 주는 권한도 아니고, 주민자치회라는 기구가 만들어지면서 비로소 생겨난 단체활동도 아니다. 민주주의 안에는 이미 주민자치가 들어 있다.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면 마을의 주인은 주민이어야 하고, 국가와 지방정부의 모든 법과 제도, 그리고 행정은 선심 쓰듯 공모사업과 예산을 주민자치에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주인인 주민이 자신의 삶과 마을을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마땅히 요구되는 모든 것을 뒷받침해야만 한다. 주민자치회의 법적 근거가 지방자치법으로 명시된 것은 참 반가운 일이다. 이로써 오랫동안 시범사업의 틀 안에 갇혀있던 주민자치가 이제 법률에 근거한 제도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반갑기만 한 변화일까’하는 생각과 함께 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왜 우리는 이제서야 주민자치를 법에 담게 되었을까?
주민자치는 나라의 민주주의가 시작될 때부터 함께 자라왔어야 한다. 그리고 헌법을 비롯한 그 하위의 모든 법령에 주민자치가 가장 중심의 내용으로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조목조목 담겨왔어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경제가 발전하는 만큼, 마을에서의 자치실현도 함께 성숙하고 완성되어 왔어야 한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이미 크게 성장한 행정체계에 뒤늦게 주민자치라는 옷을 맞추어 입히느라 이렇게 애를 쓰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번 조례개정은 ‘주민자치회는 이렇게 운영하라’는 규칙을 만드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민이 실제로 자치할 수 있는, 자치가 특화된 마을뿐 아니라 자치에 평범한 마을까지도 주민자치가 어렵지 않게 실현될 수 있는 환경이 주민자치의 현장에 담길 수 있도록 고민해야만 한다.
마을은 주민 행복의 터전이다.
마을의 주인인 주민은 마땅히 내가 사는 마을에서 행복할 권리가 있다. 마을이라는 터전에서 이웃과 함께, 나와 우리의 행복을 찾아 마음껏 상상하고, 계획하고, 나누고, 시도해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결과물을 얻었기 때문에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그 과정이 이미 행복임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바로 주민자치이다. 자치는 조직이나 단체가 아니다. 주민자치회라는 조직보다 이미 먼저 존재하는 것이 주민이고 자치이다. 그 주민을 마을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에서 주민자치는 시작되어야 하고 그에 따른 조례가 마련되어야 한다.
“과연 조례가 바뀌면, 주민자치는 정말 달라질까?”
조례개정이 본격 진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가 자문해 보아야 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과 함께 주민자치의 현장에서 경험하고 느끼는 바램들을 몇 가지 담아보며 ‘주민이 주민으로 자치하게 되는 조례개정’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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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현장에서 가장 많이 부딪히는 문제는 행정과 주민자치회의 관계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행정과 주민자치는 협력의 관계이지 결코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민자치에는 행정의 전문적인 지원이 필요하고 행정 역시 주민의 삶과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활동하는 주민자치의 현장이 행정업무의 필수이다.
문제는 현장에서 때때로 '협력'과 '관리'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주민자치와 행정의 관계가 협력이 아니라 관리의 차원이 되면, 주민자치의 본질이 훼손되고 행정에서 결정된 정책과 사업이 동·마을로 내려와 주민자치회로 전달되면서 주민자치회가 행정의 사업을 수행하는 조직처럼 움직이는 경우가 생긴다. 주민자치가 행정이 정한 일을 수행하는 조직이 되어서는 안된다. 주민이 주인이라면 행정과 주민자치회의 이러한 관계도 분명해져야 한다. 행정이 앞에서 결정하고 주민이 따라가는 구조가 아니라, 주민이 자신이 살아가는 마을의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논의하고 결정하며 해결해 나가기 위한 자치의 장이 되어야 한다. 행정은 주민자치를 관리하려 하면 안된다. 마땅히 지원하고 협력하여 주민자치를 완성하는 파트너가 되어주어야 한다.
주민자치와 행정의 역할과 성격이 명확하게 조문화되어야 한다.
행정의 역할을 축소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주민자치가 발전할수록 행정의 역할은 더욱 다양해지고 중요해진다. 다만 그 역할과 성격이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이번 조례개정에서는 주민자치회의 역할뿐 아니라 행정의 역할도 함께 고민하여 조문화되었으면 한다. 주민자치회의 자율성과 행정의 책임 있는 지원, 이 두 가지가 함께 분명해질 때 비로소 본연의 주민자치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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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해야 한다고 해서 ‘주민에게 모든 일을 맡기는 것’이 주민자치는 아니다. 현장에서 주민자치 활동을 해보면 상당한 시간적.정신적 에너지를 행정사무에 사용하게 된다. 사업계획서, 예산편성, 지출, 증빙, 정산, 결과보고서 등등. 물론 자치적 측면, 또 공공예산을 사용한다는 데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기는 하다. 하지만 주민자치회에 참여하는 주민들은 행정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주민자치회에는 마을을 사랑하는 사람,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은 사람, 꽃을 좋아하는 사람, 문화와 복지에 관심 있는 사람, 이웃과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은 행정에는 비전문가인 사람들이 들어온다. 그런 사람들에게 전문적인 행정·회계업무까지 모두 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결코 자치가 아니며, 마을을 위한 자치활동보다 서류에 매달리는 시간이 많아지는 피할 수 없는 폐단에 직면하게 된다.
전문적인 행정업무까지 주민이 직접 해야 자치인 것은 아니다.
주민자치의 본질은 주민이 서류를 잘 만드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을 사랑하고 마을의 행복을 위해 미래를 상상하고 논의하며 결정하는 데에 있다. 전문성이 필요한 일은 사무역량의 전문인력 투입이나 회계·행정 지원체계의 조정등을 통해서 해결 방법을 찾아 지원하면 된다. 이 부분이 자치의 완성을 위해서 심각하게 고민하여 해결해야만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수시로 사무 담당자가 바뀔 수밖에 없는 주민자치의 현실에서 ‘보탬e’와 같은 전문회계기능을 들이밀고 교육으로 밀어붙여 행정의 요구를 충족하는 제도는 결코 보탬이 될 수 없다. 이미 동에 배치된 전문 공무 인력이 있음에도 여기에서 해법을 찾지 않고 불가능한 업무를 요구하는 것은 전혀 자치일 수 없다. 주민에게 일을 넘기는 것이 자치가 아니다. 주민이 편안하게 자치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주민자치를 위한 행정과 제도의 역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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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자치회는 참 바쁘다. 축제를 하고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공모사업을 하고 주민참여예산사업을 수행한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나면 사업의 성과로 결과를 정리하고 포상한다. 그런데 묻고싶다. ‘사업을 많이 하는 주민자치회가 정말 주민자치를 잘하는 주민자치회일까?’. 주민자치회가 직접 모든 일을 하려고 할수록 주민자치회는 바빠지고, 정작 주민들은 참석하여 구경만 하는 객이 되어 진정한 주민자치의 확산이 아니라 주민자치회에 갇힌 주민자치가 되고 만다.
주민자치회는 사업조직이기보다는 마을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주민자치회는 사업을 수행하는 조직이기보다는 ‘마을의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마을에는 많은 사람이 있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 어르신을 돌보는 사람, 장사하는 사람, 꽃을 좋아하는 사람, 음악을 하는 사람, 사진을 찍는 사람,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 학교도 상인회도 복지기관도 있고 주민모임과 마을공동체도 있다. 주민자치회가 모든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발견하고 연결하여 각자의 관심과 활동이 마을 전체의 사업과 변화로 이어지도록 돕는 것이 더 중요한 역할이다. 주민자치회가 열 개의 사업을 직접 하는 것보다 열 개의 주민공동체가 스스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것이 더 성숙한 주민자치이다.
행정은 그 자리를 마땅히 주민자치에 내어주어야 한다.
이 부분에서도 행정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아직까지도 마을의 현장에서는 행정이 마을의 조직들과 단체들의 중심에서 관리하고 조율하고 있어 주민자치회까지도 그 조직과 단체의 한 부분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주민자치회가 마을의 선임조직이라면 말뿐이 아닌 마땅한 그 자리가 주어져야만 한다. 행정은 그 자리를 주민자치에 내어주어야 한다. 마을이 주민자치회를 중심으로 주민자치는 플랫폼이 되고 모든 마을의 단체과 조직이 실행조직이 되도록 행정이 ‘돕는 매개체’가 되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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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주민자치회와 마을공동체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마을의 현장에서는 두 영역 사이에 묘한 거리감이 존재한다. 주민자치회는 제도에 근거한 대표기구라는 이유로 마을공동체를 아래에 있는 조직처럼 바라보기도 하고, 반대로 마을공동체에서는 주민자치회를 행정과 가까운 경직된 조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주민자치회와 마을공동체는 마주 설 이유가 전혀 없다.
주민자치회에는 마을 전체를 바라보고 주민의 의견을 모아 방향을 세우는 역할이 있다. 마을공동체는 좋아하는 일과 필요를 중심으로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움직이는 특유의 힘이 있다. 주민자치라는 넓은 플랫폼 안에서 주민 모임과 공동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느슨하게 연결되고, 필요할 때 함께 움직이는 구조’로 서로 협력하고 돕는 것이 이상적이다. 이 관계를 조례 몇 줄로 모두 규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조례개정을 계기로 ‘주민자치회와 마을공동체는 어떤 관계여야 하는가’라는 건강한 질문이 시작되고 소통과 속 깊은 토론을 통해 함께하는 협력관계가 마을을 행복하게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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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주민자치회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어야 할까? ‘자치계획과 주민총회’이다. 주민들이 동네를 돌아보고 문제를 발견하고, 함께 모여 이야기하고, 다른 생각은 토론하고 조정한다. 그리고 우리 마을이 어디로 가야 할지를 함께 결정하여 자치계획을 만든다. 주민총회는 그렇게 만들어진 주민의 뜻을 확인하고 공동의 결정으로 만드는 자리이다.
주민이 함께하는 과정, 그 ‘과정’이 주민자치다.
그런데 주민총회가 1년에 한 번 개최하는 행사로 치러지고, 자치계획이 다음 해 예산을 받기 위한 사업목록을 정리하는데 그친다면 본질과 수단이 뒤바뀌는 것이다. 자치계획은 ‘내년에 무엇을 할까’를 정하는 단순한 사업정리가 아니라 ‘우리 마을이 어디로 갈 것인가’를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마을 기획의 장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주민총회 이전 사전단계에서 주민들의 의견이 상시적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 주민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본오2동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의 형식적인 결정구조를 개선키 위해 ‘마을발전100인위원회’, ‘마을사랑순수봉사단’, ‘마을행복FUN네트워크’의 3중 플랫폼을 만들고 다양한 주민들이 마을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아직 완성된 답은 아니다. 그러나 ‘주민을 참여시키는 주민자치’에서 ‘주민과 함께 만드는 주민자치’로 가보려는 시도‘이다.
주민자치의 성적표도 달라져야 한다
주민자치의 방향이 달라진다면 평가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몇 개의 사업을 했는가, 몇 명이 참석했는가, 예산을 얼마나 집행했는가만으로는 주민자치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알 수 없다. 오히려 물어야 한다. '새로운 주민이 얼마나 등장했는가?', '주민들이 얼마나 스스로 의제를 만들었는가?', '마을의 사람과 공동체와 기관이 얼마나 새롭게 연결되었는가?', '주민자치회가 직접 하지 않아도 주민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생겼는가?', '주민총회에서 결정된 주민의 뜻이 실제 마을의 변화로 얼마나 이어졌는가?' 이런 것들이 주민자치의 새로운 성적표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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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지방자치법 개정에 행정안전부는 ‘주민자치회 설치·운영에 관한 참고조례 전 부개정안’을 배포했다. 그 명칭 가운데 ‘참고조례’라는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고하라는 것이다. 행정안전부는 각 지방정부가 참고조례를 바탕으로 ‘지역 실정에 맞게 제도를 개선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안산은 안산의 답을 만들어야 한다. 안산 25개 동에서 주민들이 직접 겪어온 경험과 성과, 갈등과 한계의 해결을 담아내는 '안산형 주민자치의 틀'로서의 조례를 만들어야 한다.
조례보다 먼저 세워야 할 것은 ‘주민’이다. ‘주민이 주인이다.’
그 출발점에는 아주 단순한 원칙 하나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주민이 주인이다.’ 라는 원칙이다. 행정과 주민자치회의 관계도, 주민자치회와 마을공동체의 관계도, 사무국과 전문인력의 지원도, 주민총회와 자치계획도 결국 ‘주민이 주인’이라는 이 한 가지 원칙에서 다시 바라보며 정리되어야 한다. 주민자치는 ‘주민에게 무엇을 시킬 것인가’를 정하는 제도가 아니라, ‘주민이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는 제도’여야 한다.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을의 구경꾼이 아니라 ‘나는 이 마을의 주인이다’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조례가 바뀌면, 주민자치는 정말 달라질까?”
다시 이 질문으로 돌아왔다. 조례가 바뀐다고 저절로 모든 것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례개정을 통해 주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행정과 주민자치의 관계가 달라지고, 주민이 실제로 자기 마을을 상상하고 결정하고 움직일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그때 조례의 변화는 비로소 ‘주민의 삶의 변화, 마을의 행복한 변화’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