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니 날씨가 너무나 좋았던 지난 12월 19일(금)부터 20일(토)까지 충북 괴산의 여우숲에서 안산 마을만들기 주민리더 워크숍이 진행되었습니다. 마을만들기는 ‘주민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터전인 마을을 편안하고 즐겁고 행복한 지역 공동체로 재창조하는 것‘이라고 우리 시 조례에 표현되어 있는데요. 무엇보다 주민 스스로 할 수 있는 만큼 해 나가는 것이므로 지속해서 꾸준히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올해 6월부터 10월까지 안산 마을만들기 대화모임이 5회에 걸쳐 진행되었고 이 대화모임을 준비하고 이끌었던 분들은 주민리더로 구성된 ‘대화모임준비위원회’였습니다. 마을만들기를 할 때 가장 지치고 힘겨웠을 주민리더분들이 짧으나마 따뜻한 위로와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 위해 떠난 주민리더 워크숍. 우리는 들뜬 마음을 안고 눈 쌓인 충북 괴산의 화양계곡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화양구곡으로 가는길에 점심식사를 위해 들른 곳은 앞마당에 된장.간장 유래비와 커다란 석장승이 인상적이었던 괴산의 어느 산채한식당이었는데요. 그곳에서 죽염된장과 간장으로 버무려진 십여가지 나물과 쌈채소로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우리는 속리산 화양구곡의 멋진 설경을 기대하며 발길을 옮겼습니다. 화양구곡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이름 지은 아홉곳의 절경이 이어지는 곳인데요. 눈 덮이고 고드름 얼어있는 계곡 풍광은 한 폭의 동양화를 보듯 멋지고 아름다웠어요. 하지만 눈 쌓인 겨울계곡은 가까이 접근하기 쉽지 않았는데요. 그 중 안전하게 내려가 볼만한 곳이 마지막 구곡인 파천이었어요. 흰 눈이 넓게 펼쳐진 바위가 참 운치 있었지요. 이곳에서 단체 기념사진을 찰칵~!
마을상담원 김미영 선생님은 계곡을 내려가는 길에 눈길에 미끄러져 다리를 다쳤는데 나중에 우리의 최종 목적지인 여우숲에 갈때는 걷기가 힘들어 참 고생이었어요.
여우숲.... 여우숲이라... 궁금하지요?
여우숲에는 여우가 없어요. 여우숲은 여우가 되살아오는 날을 기다린다는 염원을 담아 지은 이름이래요. (여우숲의 사람들은 반딧불이, 산양, 담비와 함께 여우가 되살아오려면 사람공동체와 이웃한 생명공동체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믿어요.) 이곳은 다른 생명을 이웃공동체로 여기고 귀하게 대하는 마음과 실천을 이어가고자, 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내가 그 중심에 있음을 깨달아 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합니다. (참고: 여우숲 http://foxforest.kr )
두 달 전에 감골주민회가 먼저 다녀가고 워크숍 장소로 추천해주신 곳이죠. 더구나 여우숲은 마을공동체의 회복을 돕는 마을디자인대학 지도교수 중 한분이 설계, 시공한 쉼터와 자연공간이기도 하답니다.
여우숲을 가려면 주차장에서부터 산길을 한참 걸어 올라가야 했어요. 포장된 길이 아닌 흙길을 걸어야 하고, 느리게 천천히 걸어야 하는 길이지요. 이 길이 특별한 이유는 또 있는데요. 나의 불편함이 단지 불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의도된” 불편을 즐겨서 여우숲과 사람이 함께 상생하는 기쁨과 치유를 얻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기 때문이지요.
저는 야식으로 먹을 보리음료를 사수하느라 눈 쌓인 여우숲길과 한바탕 씨름을 해야 했지요. 여우숲에 계신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구요. “아니, 하룻밤 새에 그 많은걸 다 마시려구요?”
“.... 네...^^;”
여우숲의 정기 때문인지 산 속 공기가 맑아서였는지 저녁식사 무렵에 딱 맞추어 도착한 일행은 소복한 눈 속에 자리 잡은 여우숲을 바라보며 마음이 편안하고 노곤해졌습니다. 모두 맛난 버섯전골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본격적인 워크숍 시간을 가졌습니다. 원곡본동 김학래(원곡본동 좋은마을만들기추진위원회) 선생님은 처음 경험하는 리더워크숍이 멋진 장소여서 더 좋다고 말문을 열어주셨고, 이영임(감골주민회) 선생님은 올해 대화모임의 시작이 의미 있는 것이었고 이번 워크숍이 마을만들기에 힘이 되는 의견을 모으는 시간으로 감사하지만 꼭 있어야 하는 자리임에 분명하고 덧붙여 서로에게 동력과 위로와 힘이 되는 기회이기를 바란다고 얘기하셨어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2014년을 돌아보고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 2015년에는 개선하고 싶은 점, 하고 싶은 것들을 서로 나누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창밖에는 하얀 눈이 소리 없이 쌓여갔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새벽녘까지 그칠 줄을 몰랐습니다.
다음날 아침, 방 한 면을 가득 채운 창을 통해 바라본 바깥 풍경은 감탄을 자아내게 했는데요. 저마다 숙소 주변의 자연생태를 둘러보거나 눈사람을 만들면서 숲속의 청량한 아침을 즐겼습니다.
오전에는 김용규 선생님(숲학교 오래된미래 교장)으로부터 ‘숲이 알려주는 사람공동체’에 대한 강의를 듣고 산아래 미루마을로 내려갔습니다.
숲속작은책방이 있는 미루마을은 세련된 주택들이 들어선 외국의 마을풍경 같았는데요. 미루마을의 깔끔한 가정집에서 이 마을 부부가 정성가득 마련해주신 점심을 배불리 먹고 난 우리는, 다시 우리들의 마을, 안산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을리더는 서로 알은체 하고 도와주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 공동의 이익과 행복을 만들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됩니다. 잘난 사람으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고 다수의 의견을 모아서 함께 실행에 옮기는 사람이지요. 남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삶이지만 내 것을 챙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경쟁하는 것을 피하고 가치지향적인 삶을 원하고 즐긴다면 마을활동가로 살아갈 수 있지요.
한해를 정리하는 2014년 12월, 마을에 계신 선생님들이 마을만들기 과정을 즐겁고 행복하게 이어가셨으면 좋겠습니다.